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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선사로 Let's go 서울시 동북부는 높은 산(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일부에서는 서울시 동부북 지역의 높은 산지를 "서울의 허파"라고까지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서울시 동북부의 여러 지역은 이들 "서울의 허파"라 불리는 산으로 통하는 곳이 많다. 그러한 서울시 동부북 지역 중 대표적인 곳이 "우이동(牛耳洞)"으로 북한산 국립공원으로 통하는 대표적인 관문미라 서울시 각지에서 우이동으로 통하는 대중교통도 잘 갖추어져 서울시내 어디서든 접근이 용이하다. 북한산 국립공원으로 향하는 관문인 우이동에서 힘들이지 않고 부담없이 갈 수 있는 곳이 서울의 대표하는 관광지이자 서울의 3대 고찰 중 하나인 "도선사(道詵寺)" 이다. 이에 MTS에서는 우이동 도선사입구에서 도선사 경내가지의 2.5km 답사 여정을 적어본다. (2) 우이동까지의 교통편도선사에 가려면 우이동까지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여기에서는 우이동까지의 연계 대중교통편을 알아본다.1) 버스 이용시 서울 각지에서 아래의 버스노선을 이용하여 "우이동(도선사입구)" 정류장에서 하차... (단, 버스노선은 2005년 9월 1일 이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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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교통수단인 버스/지하철을 이용하여 우이동(도선사입구)에 도착했다. 이제 도선사로 향하는 여정만이 남은 것이다. 도선사입구 진입로(이하 도선사길)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치게 되는 모습이 우이동에 본사를 둔 영신여객(榮新旅客), 삼양교통(三陽交通) 차고지의 분주한 모습, 제일은행 연수원 즐비한 등산용품 상점과 식당가 그리고 "도선사 신도 셔틀버스"를 탈 수 있는 도선사 주차장이다. 도선사 주차장에서 도선사까지는 도선사길을 따라 2.5km의 여정이다. 결코 짧지도 그러나 길지도 않은 여정이지만 천년 고찰인 도선사를 처음 방문한 분이라면 도선사길은 일반 등산로와는 달리 전구간이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어 걸어서 올라가기 어려운 길은 아니니 이도 천년 고찰의 첫 방문에 대한 수행이자 등산이라 생각하고 도선사길을 따라 걸어올라가는 방법을 택하자. 그럼 이제 도선사길을 따라 걸어가는 도선사로 향하는 여정을 시작한다. (1) 손병희 선생 묘, 봉황각(천도교종학대학원)우이빌라를 지나 도선사길에 본격적으로 들어서면 예사롭지 않은 풍경이 하나 펼쳐진다. 바로 길을 따라 태극기가 게양되어 있는 풍경이다. "도선사로 향하는 길에 웬 태극기?"하며 의아해 하실 분들이 많으리라 본다. 사실 우이동은 도선사가 있다는 것 이외에도 단군신앙을 기초로 한 우리나라의 고유종교인 "천도교(天道敎)"의 성지이자 1919년 일제시대 하에서 일어난 독립운동의 분수령이 된 3 ·1독립만세운동의 발생지인 "봉황각(鳳凰閣)" 그리고 3 ·1독립만세운동을 대표하셨던 독립운동가이신 손병희 선생께서 잠들고 계신 "의암 손병희선생 묘(義菴 孫秉熙之墓)" 등이 자리잡은 독립운동의 성지이기도 하다.
여기서 의암 손병희 선생과, 봉황각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한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의암 손병희 (義菴 孫秉熙, 1861. 4. 8. ~ 1922. 5. 19.) 호 의암(義菴). 초명 응구(應九). 후명 규동(奎東). 충북 청주(淸州) 출생. 1882년(고종 19) 22세 때 동학(東學)에 입교, 2년 후 교주 최시형(崔時亨)을 만나 수제자로서 연성수도(鍊性修道)하였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 통령(統領)으로서 북접(北接)의 농민군을 이끌고 남접(南接)의 전봉준(全琫準)과 논산에서 합세, 호남 ·호서를 석권하고 북상하여 관군을 격파했으나, 일본군의 개입으로 실패하고 원산(元山) ·강계(江界) 등지로 피신하였다. 1897년부터 최시형의 뒤를 이어 3년 동안 지하에서 교세 확장에 힘쓰다가 1901년 일본을 경유,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여 이상헌(李祥憲)이라는 가명을 사용하였다.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오세창(吳世昌) ·박영효(朴泳孝) 등을 만나 국내사정을 듣고 1903년에 귀국, 두 차례에 걸쳐 청년들을 선발하여 일본으로 데리고 건너가 유학시켰다. 1904년 권동진(權東鎭) ·오세창 등과 개혁운동을 목표로 진보회(進步會)를 조직한 후 이용구(李容九)를 파견하여 국내 조직에 착수, 경향 각지에 회원 16만 명을 확보하고 전회원에게 단발령(斷髮令)을 내리는 등 신생활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듬해 이용구가 배신하여 친일단체인 유신회(維新會)와 합하여 일진회(一進會)를 만들고 을사조약에 찬동하는 성명을 내자, 즉시 귀국하여 일진회와는 관계가 없음을 밝히고 이용구 등 친일분자 26명을 출교(黜敎)시켰다. 1906년 동학을 천도교(天道敎)로 개칭하고 제3세 교주에 취임, 교세 확장운동을 벌이는 한편, 출판사 보성사(普成社)를 창립하고 보성(普成) ·동덕(同德) 등의 학교를 인수하여 교육 ·문화사업에 힘썼다. 1908년 교주 자리를 박인호(朴寅浩)에게 인계하고 우이동에 은거, 수도에 힘쓰다가 1919년 민족대표 33인의 대표로 3 ·1운동을 주도하고 경찰에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이듬해 10월 병보석으로 출감 치료중 별장 상춘원(常春園)에서 사망했다. 1962년 건국공로훈장 중장(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봉황각 (鳳凰閣) (2) 우이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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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계곡을 따라 도선사길을 걸어오면 도선사길을 따라 같이 따라오던 우이계곡의 방향이 바뀌는 지점에서 두갈래 길이 나온다. 이 두갈래 길 중 경사가 갑자기 가파라지는 쪽의 길이 본격적인 도선사로 향하는 도선사 진입로이다. (1) 도선사 진입로의 여정먼저 도선사길 중간의 두갈래 길 중 경사가 완만하고 주차장 진입로와 같은 길은 "할렐루야 기도원(통곡의 벽)"으로 향하는 진입로로 현재는 개신교 종단에서 운영하는 종교시설이지만 기도원이 들어서기 전에는 "고향산천(故鄕山天)"이란 한정식 전문 대형음식점이었다. 할렐루야 기도원 주위의 풍광(風光)은 수려하여 종종 방송사에서 드라마제작 장소로 활용되기도 하며, 예전에 대형음식점이었던 전력이 있어 주차장이 넓고 넉넉하여 현재 할렐루야 기도원 주차장은 인근의 영신여객, 삼양교통 등의 시내버스 업체들이 예비차 및 운휴차를 주차하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할렐루야 기도원을 통해 북한산 국립공원의 남동쪽 능선인 "진달래능선"으로 향하는 등산로와 연결되어 있어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도선사의 제2문인 자비문은 연화석주로 된 총문의 형식을 하고 있으며, 자비문에는 각각, "자비무적(慈悲無敵), 방생도량(放生道場)"이란 첨담대종사(靑潭大宗師)의 친필휘호가 세겨져 있다. 자비문 옆에는 의자가 있는 작은 쉼터가 조성되어 있어 도선고개를 힘들게 올라온 도선사 신도 및 등산객들이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다.도선사의 제2문인 자비문을 뒤로 하면 경사가 비교적 완만한 길이 펼쳐지고 이를 따라 200m 정도 걸어올라가면 도선사의 제3문인 "천지문(天地門)"이 서 있다.
도선사의 제3문인 천지문은 붙이문의 형식으로 하늘과 땅이 근본에 있어 하나임을 상징하고 있으며, 천지문에는 각각, "천지동근(天地同根), 만물일체(萬物一體)"란 휘호가 세겨져 있다. (2) 극락암과 도선사 마음의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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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사 마음의 광장에서 도선사 경내로 들어서는 진입로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큰 누각과 같은 문이 있다. 미 문이 도선사의 제4문인 "천왕문(天王門)"이다.
천왕문을 구성하는 누각에는 누각 전면의 해태상과 함께 누각에 "삼각산도선사(三角山道詵寺)"라 쓰여진 현판이 붙어 있어 천왕문이 도선사 경내로 들어가는 실질적인 입구임음 보여주고 있다. 천왕문의 안쪽으로는 불교에서 부처와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인 "사천왕(四天王)"의 목조입상이 자리잡고 있다.사천왕 불교에서 수미산의 동, 서, 남, 북에서 불법을 수호하고 인간의 선악을 관찰하는 귀신으로 "호세사천왕(護世四天王)"이라고도 한다. 욕계육천(欲界六天)의 최하위를 차지한다. 방위별로 "동방지국천왕(東方持國天王), 북방다문천왕(北方多聞天王), 서방광목천왕(西方廣目天王), 남방증장천왕(南方增長天王)"이 있다.천왕문을 통과하면 바로 우측으로 "포대화상(布袋和尙)" 석조좌상이 있으며 150m 정도를 더 걸어가면 도선사의 제5문이자 도선사의 마지막 입구를 이루는 아미타불의 무량수 무량광을 상징하는 일명 극락문인 "광명문(光明門)"이 서 있다.
도선사의 제5문이자 마지막 입구인 광명문에는 각각, "신념무적(信念無敵), 만고광명(萬古光明)"란 휘호가 세겨져 있다. 도선사 광명문을 통과하면 그제서야 본격적인 도선사 경내로서 이곳에서부터 도선사의 가람을 이루는 건물이 보이기 &nb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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